| Ⅴ. 전시를 마무리하며
이번 전시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부분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째, ‘이것이 왜 렘브란트전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전시명을 정하면서 많은 고심을 했다. ‘거장 렘브란트와 황금시대’, ‘네덜란드의 황금기 : 렘브란트의 시대’, ‘렘브란트와 동시대 화가들’,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 ‘렘브란트 시대의 네덜란드 회화’ 등 다양한 제목들이 논의되었다. 제목을 정하면서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렘브란트’를 넣었을 경우 제기될 파장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세계를 보여주자는 것이지만 ‘렘브란트’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는 17세기의 네덜란드 미술의 중요성을 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민들의 의해 성취된 위대한 회화라는 의미로 ‘위대한 회화의 시대’라는 주제(主題)를 넣고 부제(副題)에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회화’를 넣었다. 비록 부제에 넣긴 했지만 사람들은 이번 전시를 간략하게 ‘렘브란트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기위해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렘브란트’의 지명도 때문에 작품선정 시 렘브란트의 작품을 대여해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작품을 추가하는데 성공하였다.
보통 작가당 1점이 기본인데 비해 3점이 선정된 것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작품이 다수일거라고 기대하고 온 관람객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렘브란트의 작품외에도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단지 유명작가의 작품을 본다는 것보다는 17세기 네덜란드회화가 미술사에서는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를 살펴보고 공감한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네덜란드 미술의 진수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둘째, ‘상업적인 전시’라는 부분이다.
‘렘브란트’라는 이름을 내건 것부터 공동주최사와 전시를 하는 것, 비싼 관람료를 받는 것을 들면서 상업적인 전시라고 한다. ‘국립미술관이 이래서 되는가, 누구를 위한 전시인가, 다른 주최사에게 특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미술관 입장에서는 좀더 좋은 전시,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전시를 개최하여 되도록이면 다수의 국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길 원한다. 그러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동주최의 형식으로 전시를 이끌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협찬사와 공동주최사를 찾기란 또한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이윤이라는 목적에 어느 정도 끌려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돈을 사용하면서 상업성을 배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미술관이 얼마나 중재를 할 수 있고 중심을 잡고 있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래서 미술관에서는 이번 전시의 수입금 배분에 있어서 5%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번 전시가 해외의 작품들을 국내에 알린 만큼 순수입금의 5%를 국내작가를 해외에 알리는데 활용하여 한국미술의 해외홍보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의 미술관에 국내 작가의 작품을 구입 기증한다거나 또는 국내작가를 해외에 홍보하는 예산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상업적인 틀 안에서 일시적인 대처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단기적인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현실에 맞는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단기성의 돈되는 전시를 추구하기보다는 질 좋은 전시를 개최하여 많은 국민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기업과 연관되어 일을 진행하면서 ‘말만 거창한 문화사업이구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기업들은 단기에 이윤을 얻고자 하는 얄팍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의 어느 미술관도 미술관의 고유사업을 통해 지출한 경비만큼 수입을 올리는 경우는 없다. 문화사업을 단순히 손익계산 차원에서 떠나 장기적인 기업 이미지 제고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 사회적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공감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세제상 혜택들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것이 가능해질 때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지원하는 의식 또한 성숙해질 것으로 보인다.
세째, 관람방법과 전시장 상태에 관한 부분이다.
‘전시장에 사람이 너무 많다. 전시장이 어둡다. 춥다. 시끄럽다’ 등의 민원이 있었다. 전시기간동안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고 그들을 수용하다보니 전시장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오래 기다려서 들어온 사람들은 전시장에 오래 머물면서 명화를 감상하기를 원했지만 덕수궁미술관은 이들을 수용하기엔 너무 비좁았다.
사람들이 줄 서있는 전시장과 로비를 제외하고 휴식공간이라고는 3층 복도 한켠에 있는 커피숍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음이 안되는 전시장은 구두소리부터 작은 소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 때로는 작품설명하는 소리까지 조용히 전시를 관람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하였다.
전시개최 전부터 관람인원을 제한하여 쾌적한 관람 공간을 만들자고 다른 공동주최사와 공유는 했지만 막상 많은 인원이 닥쳤을 때 그 인원들을 모두 수용하지않고 제한하기란 쉽지 않았다. 외국의 경우 대형 미술관은 공간이 넓어 많은 인원을 충분히 수용할 뿐 아니라 관람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반면, 우리는 전시공간의 개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관람문화조차 정착되지 않아 현실에 맞는 전시관람 방안을 모색하는데 난항(難航)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실제로 시행은 못했지만 여러 논의들 중에서 이런 제안이 있었다. 영화관처럼 전시 관람시간을 5회 내지 7회로 구분하여 입장권을 판매한다. 지금은 입장권을 전산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모든 입장권에 번호가 찍힌다. 즉 1회의 시간이 9시부터 10시 30분까지라면 그 시간에 들어올 수 있는 입장권번호는 0번부터 300번까지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번호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그 시간에 입장시킨다.
그렇다면 입장권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설지언정 또 입장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설 필요는 없게 된다. 입장권을 산 후 자신이 입장가능한 시간에 미술관을 방문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입장한 사람이 하루 종일 관람을 원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입장객의 수를 이렇듯 조절함으로써 관람인원을 적정 수로 제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덕수궁미술관에 적용하기에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번 전시같이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사전에 전시 관람방법의 세심한 부분까지도 공동주최사와 함께 숙지하고 명확히 약정화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미술관의 이미지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전시장 조명이 어둡고, 전시장이 춥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작품의 보호차원에서 이해해 주어야 한다. 오래된 작품이기 때문에 빛에 의한 색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150룩스로 조명 밝기를 제한하고 온도 19。C± 3。C, 습도 55%±5%로 조절하고 있다.
외국미술관에서 오래된 작품을 대여해 줄 때 이러한 미술관의 온습도 조절기능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된다. 원래 이 전시가 종료된 후 지방미술관으로의 순회전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지방 미술관에서 온습도를 조절하는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전시가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것은 외국미술관이 미술품의 상태보존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상과 같이 그동안 제기되었던 민원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럼, 과연 전시란 무엇이고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가?
전시란 완벽한 시스템이 결부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작품과도 같다. 작품에 대한 기획을 구상하는 과정, 작품을 찾아내고 빌려오기까지의 과정, 작품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과정, 전시를 홍보하고 교육하는 과정 등 이 모든 것이 전문성을 동반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다면 전시회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팀웍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시간이다. 장시간의 연구와 의사교섭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이 선행되어야만 깊이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좋은 전시를 개최할 수 있다. 또한 전시의 복잡다단한 진행과정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예산이다. 미술관이 넉넉한 예산을 확보하고 있어 전시를 진행시킨다면 외부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산의 부족으로 전시의 개최여부가 불투명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럴때 좀더 안정된 기반에서 전시를 깊이있고 체계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이 더 많은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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