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판화40년』전을 통하여 본 한국판화의 사적 고찰

최은주(학예연구관)

1. 한국판화의 성격
2. 한국의 고대판화
3. 고려시대의 판화		 4. 조선시대의 판화
5. 근·현대기의 한국판화
6. 한국판화의 전통성과 현대성
3. 고려시대의 판화

가. 고려 판화의 성격

우리나라의 고대문화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정착되어 갔다. 그 중에서도 교리전달 을 위한 불경의 간행은 인쇄문화의 효시가 되었고 고려 건국초기부터 많은 서적을 수집 보관하고 간행하였다.

인쇄는 주로 목판인쇄에 의존하였고 고려시대 간행사업의 대부분은 불경의 편찬이 었다. 10세기와 11세기에 간행된 불경 속에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거나 포교를 위한 판화들이 다수 들어 있다.

불교문화에 힘입어 제작된 고려시대 불경 중심의 판화들은 이후 조선시대로 이 어져 한국판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고려시대에 이렇게 우수한 판화가 제작된 것 은 어떤 다른 요인보다도 그 시대 고려인들의 정신적인 염원이 예술적인 차원의 결 정체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판화를 제작한 각수들은 수많은 글자 와 변상의 판각을 정성껏 각을 하여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목판인쇄물들을 창조하였다.

나. 고려 판화의 분류

고려의 판화는 내용이나 양식면에서 대개가 불경류의 판화였다. 때문에 그것의 분 류체계는 제작의 주체가 어느 곳이었는가의 관점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려의 판화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국가적 차원에서 간행한 대장경을 위시한 불경류의 판화,
둘째, 개개의 사찰에서 펴낸 사찰간본의 판화,
세째, 중앙관청과 지방관청에서 펴낸 관판본 판화이다.

첫째의 경우 (初周大藏經), (續藏經), (再周大藏經) 등 대장경류가 거의 대부분이 다. (高麗大藏經)은 현재까지 남아있어 국내외 보급용 대장경의 근간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의 정확함과 자체의 아름다움, 목판제작의 정교함이 동양에서 개판 된 20여종의 대장경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찰간본 판화로는 (大般若經 600卷), (三本華嚴經), (佛說長壽滅罪護 諸童子經), (父母恩重經) 등이 전한다.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발전된 사찰간본들은 고려의 숭불정책과 풍요해져 가는 사원경제에 힘입어 상당히 활발하였으리라고 추 측된다.

마지막으로 고려의 관판본을 살펴보면, 과거제도가 채택된 광종 이후 경서, 사서 등의 서적을 정비, 축적하기 위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관판본은 대부분 유교 계통의 서적으로 판화본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다. 불교판화의 발생과 개념

고려의 판화는 불화의 다양한 양식 속에서 발전하였다. 불화의 용도는 세가지이 다. 첫째, 불전을 장식하면서 장엄한 인상을 주기 위한 불화, 둘째, 일반대중에게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알기 쉽게 전달해 주고자 그려진 교화용 불화 세째, 의식같 은 때 이용되는 예배용 불화 등 세가지이다. 불교판화는 주로 두번째의 용도를 위해 제작되었다.

대체로 불교판화를 넓은 의미에서 '변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변화되어 나타난 모 습이란 뜻으로, 변상이란 부처의 본생이나 불전 또는 정토의 장엄함을 조각이나 회 화로 나타낸 것으로 이들을 판화기법으로 제작한 경우를 '변상판화'라고 한다.

변상 판화는 불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고 새겨 경전의 각 장마다 그림과 글을 동시에 실어 각권의 앞머리에 그 경전이 뜻하고 있는 내용을 압축, 묘사하는 것, 경전이 보 호될 것을 기원하는 뜻에서 신상을 그린 것, 모든 장마다 그 장이 뜻하는 내용을 그 린 것 등으로 나타난다.

불화의 또 다른 양식인 탱화와 벽화가 다색으로 제작된 반면 경전의 변상판화는 주로 단색이고 재료상의 제약때문에 크기에도 많은 제약을 받았다. 작품의 구도는 축소되고 생략된다.

따라서 변상판화는 경전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강조하 고자 하는 내응 중심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변상판화는 교리전달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므로 그 내용이 교훈적인 것에 촛점이 맞추어진다.

라. 총지사판 寶　印陀羅尼經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판화는 고려 목종 10년(1007년) 개성 총지사에서 개판 한 (寶　印陀羅尼經)속의 변상판화이다. 이 경은 너비 7.8cm, 전장 240cm, 각 행의 자수가 8∼9자인 소형 목판권본이다. 이 경의 형태는 소형의 목심축에 감겨진 두루 마리로 사리함에 넣어 불탑에 봉안하기 위해 간행한 것이다.

책의 머리에는 총지사 주지인 홍철이 개판한 간기에 이어 변상도와 본문을 정교하 게 새기고 있다. 변상의 판화는 세존이 무구묘광의 바라문가로 공양차 인도되는 장 면을 그린 것이다. 다라니는 쉽게 말해서 주문인데 다라니경은 만약 경문을 읽고 뜻 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경문 윗부분에 그림을 보면 그 내용을 쉽게 파악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 고려시대, 총지시판(寶印陀羅尼經)


<寶　印陀羅尼經>도 다라니경 중 하나이며 고려시대에 이런 류의 변상도가 다량으 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寶　印陀羅尼經)은 고려 초기의 대표 적인 정각본이며 당시의 간본 중 백미임을 자랑한다.



마. 高麗大藏經

잦은 외침에 대한 불력에의 의지, 문화국으로서의 위력, 불경의 정리를 위해 고려 왕조는 대장경의 간행을 국가적인 차원의 사업으로 진행하였다 현종 12년(1011 년)에 주조가 시작된 것이 대장경 판각이며 이를 (初周大藏經)이라고 한다. (初周大 藏經)은 선종 4년(1087년)에 완성되었다.

이는 송나라의 판본에 준거하여 제작되었 는데 판각술은 고려 것이 더 우수하다. (初周大藏經)에는 (御製秘藏詮)의 뛰어난 산수풍의 판화들이 수록되어 있다.

(御製秘藏詮) 판화의 구도나 판각기법은 송판본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북송 태종 (976∼997)대에 제작된 북송본 (御製秘藏詮)은 하버드대학 포그미술관에, 우리나 라의 것은 일본 경도 남선사에 권13이, 서울 성암고서박물관에 권6이 현존한다. 성 암고서박물관 소장의 판화는 모두 4장으로 크기는 52.6×22.7cm이 다.

(御製秘藏詮) 에는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보리도량에서 불법을 설파하고 구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일종의 산수풍의 판화로 강과 산, 구름이 전, 중, 후경으로 전체 화면 을 구성하고 있으며 승려가 고승의 설법을 경청하는 장면, 법문을 듣고 득도하기 위 해 찾아오는 장면, 불도를 득도하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고려의 (御製秘藏詮)은 북송본의 지나치게 유연한 필치를 탈피한 웅장하면서도 대 범한 자연주의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각 화면의 요소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세 련된 구도를 보여준다. (御製秘藏詮)의 판화는 그 당시의 산수화풍 및 불교미술에 관한 자료와 고려의 뛰어난 목판술을 보여준다

현종, 선종 양대에 걸쳐 초주대장경의 작업이 끝나고 문종조 후기부터는 승 의천 (1055년∼1101년)에 의해 (續藏經)의 간행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는 동양 각국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新編諸宗敎藏總錄)을 선종 7년(1090년)에 만들었다. 속장경은 고 려인의 자체 능력으로 만들어낸 독자적인 목판본이라는 점에 있어서 의의가 크다.

<再周大藏經>은 몽고인의 침입으로 초주대장경이 모두 소실되자 불력의 수호로 외 침을 물리치고자 다시 발원하여 재차 주조한 것을 말한다. 우리가 (八萬大藏經)이라 고 부르는 해인사 소장의 대장경이 재주대장경이다. 재주대장경은 초주대장경 판본 을 비롯한 대외의 대장경과의 대비는 물론 각종의 불경 목록까지 두루 참고하여 교정, 보수한 다음 번각한 것이다.



바. 기 타

현재까지 전해지는 국보급 고려판화는 (大方廣佛華嚴經周本)(12∼13세기), (小字 本妙法蓮華經)(충렬왕 12년,1286년) , (細小字金剛般若波羅密經)(충선왕 3년,1311 던), (金剛般若波羅密經)(공민왕 12년,1363년), (弗說大報父母恩重經)(우왕 4 년,1378년)등이 있다.

이 중 (父母恩重經)은 고려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가장 대중적인 불경의 하나가 되었다. 유교 특히 성리학의 효사상과 부합된 이 경은 판본만도 60 여 가지를 헤아린다. 이들 경에는 거의 빠짐없이 변상판화가 있다. 일반인들에게 알 려지는 대중적인 경은 대개 각 장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판화들이 있기 때문이 다. 부모은중경은 대개 21장면으로 구성된다. (弗說大報父母恩重經)은 부모은중경 중 가장 오래된 진본일 뿐더러 여러 종의 그림이 정교하게 판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