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판화40년』전을 통하여 본 한국판화의 사적 고찰

최은주(학예연구관)

1. 한국판화의 성격
2. 한국의 고대판화
3. 고려시대의 판화		 4. 조선시대의 판화
5. 근·현대기의 한국판화
6. 한국판화의 전통성과 현대성
2. 한국의 고대판화

가. 한국 고대판화의 성격

세계 최초의 판화는 목판인쇄의 형식으로 고대 중국에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 당시 중국의 문명은 세계국가적인 성격을 띄었던 까닭에 중국의 목판 인쇄술은 인접국가인 우리나라에 곧바로 전해져 중국보다 오히려 내용이나 기법면 에서 우수한 목판 인쇄술이 제작된 것을 (無垢淨光大陀羅尼經)(신라 경덕왕 751 년)의 예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한 의미의 판화라고 볼 수 없는 까닭은 판화란 어떤 착상이나 구상이 회화적 이미지(pictorial image)로 나타나 하나의 표면에서 또 다른 표면으로 전달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판화는 고려 목종 10년(1007년)에 제 작된 총지사판 (寶　印陀羅尼經)이다. 이 불경에는 석가모니의 행적을 나타내는 변 상판화가 들어있다. 고려시대의 판화는 대부분 불경류로서 종교적인 염원을 바탕으 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대장경과 같이 우리나라 판화사의 최정점을 차지하는 뛰 어난 목판화를 많이 남겼다.

고려시대를 이어 조선시대에는 판화의 양식이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조선시 대의 판화는 불교, 유교, 무속과 도교 관계 뿐만 아니라 민화, 민예품, 화보, 지도, 전각, 탁본 등 생활 전반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응용되고 있다.

나. 삼국시대 이전

넓은 의미에서 판화의 역사는 거대한 석벽에 암각화를 새겨넣거나 토기에 직선이 나 곡선의 문양을 새겨넣을 때부터 이미 잉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울주군 반구대와 고령 양 전동 등지의 암각화에 판화의 시원이 될 수 있는 여러가지 제작기법이 발견되고 있 다. 암각화의 제작은 쪼아파기(Pecking), 그어파기(engraving), 갈아내기(grind- ing)기법으로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암각화 이외에도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농경문청동기, 다뉴 세문경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들이 대개 긁거나 갉아서 새겨 표식을 내는 제판 기법으로 제작되어 있다. 그러나 고대 사회의 이런 유적들은 판화의 시원을 암시하는 간접적 사료일 뿐 판 화의 직접적인 기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판의 형태를 빌어 어떤 형상을 찍어내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 대부터 이다.

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판화의 기초가 되는 개별의 발명이 중국에서 이루어져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전 파되었다. 불인, 탑인 등의 도장류를 종이나 천에 다량으로 찍어내어 납탑(納塔)하 는데서 시작된 판화의 발상은 소형판에 다라니경을 판각하여 다량 인출해서 납탑불 사(納塔佛事)하는 방법을 낳았고 그 경험이 일반적인 경전이나 서적의 간행을 가져 왔다. 그밖에도 인장, 석경, 판불, 탁본 등 판화의 발명을 가져올 유물들이 남아있 다.

도장은 금속이나 돌의 표면 위에 사람의 이름이나 부호, 관직명 등을 새겨 인주나 먹을 묻혀 문서 등에 찍는 인쇄술의 가장 초보적이고 대중적인 형식이다. 삼국통일 초기 문무왕 15년(675년)에 동으로 중앙과 지방관청의 인장을 주조한 기록이 남아 있다.

같은 문무왕 때의 지리산 화엄사 석경도 판화기법의 발명을 암시해 주는 유적 이다. 이 석경은 돌에 불경을 새겨 많은 양을 탁본하여 불도(佛徒)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판불이란 금동의 판형으로 표현된 불상을 말한다. 판불의 제작방법은 얇은 동판을 오려 원형에 대고 두드려서 시문하는 것으로 다량생산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는 금동불감의 예가 있다.

마지막으로 탁본을 살펴보자. 탁본의 과정은 인장이나 비석 등에 종이를 대고 인 주나 먹을 두들겨서 습본을 얻는 기법이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비석류의 유물발 굴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대국가의 틀에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가 형성, 발전되어가는 사회적 성장기인 통일신라시대에 비로소 목판인쇄술이 발명되었다. 그 결정체가 1967년 불국사 석가 탑에서 발견된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이것은 폭 6.5cm, 직경 4cm의 소형권자 본으로 문자만이 각인되어있다. 이 경전은 목판인쇄술의 성격을 구비한 최초의 예 이지만 화판부분이 없어 판화사연구의 직접적인 사례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뛰어난 판각법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이후에 발견된 목판경은 없다. 문헌상으로는 신라 애장왕 (800∼808년)때의 해인사 대장경 주조설과 신라말에 신라시의 인출 사례 등이 전 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