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연구 제 6 집

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의 역할 - 역사적 전개와 의의 - 이 은 기(목원대학교 교수)

	Ⅰ. 序 - 후원자와 미술사가와 행정가 Ⅱ.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관과 후원자 Ⅲ. 우피치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	Ⅳ. 他문화 미술품에 대한 관심 - 대영박물관 Ⅴ. 뉴욕 현대미술관 설립의 세후원자와행정가 Ⅵ. 結-앞으로의 후원에 대하여

Ⅳ. 他文化 미술품에 대한 관심 - 대영박물관 1753년에 성립되고 6년 후부터 문을 연 대영박물관은 수장품의 종류와 규모, 후원자와 후대 에 끼친 영향력 등의 면에서 16세기 우피치미술관의 경우와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우선 우피 치미술관의 소장품은 고대 로마와 자국이 이룬 르네상스 미술에 국한되어 있는 반면에 대영 박물관의 소장품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아프리카, 서아시아, 극동아시아, 인도,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 지역의 미술품이다. 후원자 또한 우피치는 지배적인 한 가문에 의 해 이루어진 것인데 반해 대영박물관은 국가에서 주도하면서 수집품을 사들이거나 정책적인 발굴에 의한 대량의 유물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자국이 이룬 문화를 보전하는 기능 을 가진 미술관과는 달리 타국의 미술품을 가지고 와 수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식민지 점 령시대에 제국주의 국가가 갖은 특권이었다. 대영박물관의 자랑인 원시미술과 이집트미술 그리고 그리스 조각품들은 대부분 식민지 국 가에 파견된 의사나 총영사의 손에 의해 발굴되고 수집된 미술품들을 대영박물관에서 사들이 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18세기 중엽의 수집가 한스 슬로안경(Sir Hans Sloane, 1660- 1753)은 유명한 의사였으며 왕립원의 회장을 지낸 명사였다. 그의 수집은 그가 의과대학을 졸 업한 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쟈마이카에, 총영사의 의사자격으로 파견되었던 젊은 때부 터 시작되었다. 몇년 후 런던에 돌아올 때 그는 쟈마이카의 원시미술품을 가져오고 「쟈마이카 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Jamaica)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는 자신의 수집품들 을 '호기심이 가득한 물건들'이라고 불렀는데, 우리가 정의한다면 '인종학적인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그의 수집은 원시미술에 그치지 않고 거의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지녀서 필사본, 메달, 책, 지도 악기, 회화, 드로잉 등 거의 모든 종류에 걸쳐 69,352점에 달하였다. 한스 슬로안은 자신의 수집품을 2만 스텔린에 국가에 제공하겠다고 표명하였다. 그가 자신이 들인 액수의 4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국가에 제공하고자 한 이유는 "예술과 학문의 증진을 위한 자선 으로, 그리고 인간성을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 영국국회에서는 성직자, 공직자,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결성하여 추진하였다. 위원회에서는 "모든 수집품 은.... 공익과 후손을 위해 보존되어야 하며....... 연구자와 관심을 가진 사람에겐 언제나 공개되 어야 한다"는 발표문과 함께 구입을 결정하몄다. 14) 즉 미술품(내지는 수집품)은 개인의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것이며, 교육적인 자료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의 수집의 모범적인 사례가 계기가 되어 그후 대영박물관에서는 공공기관으로서, 거의 전 세계에 걸친 수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후원하였다. 19세기 중엽에 행해진 대표적인 발굴의 후 원은 할리카르나소(Halicarnassos)의 마우솔레오(Mausoleo), 크니도(Cnido), 디디마(Dydim- a) 등 소아시아 반도에 있는 헬레니즘 시기의 유적들이며 이곳의 출토품들은 현재의 대영박 물관 전시품 중 가장 중요한 미술품들이 되어있다. 이 후원은 물론 연구의 목적뿐만이 아니 라, 거의 빼앗는 것과 다름없는 발굴이었다. 영국인에게 이 정책은 정치문제보다 더 중요하였 다고 한다. 19세기 초 이집트의 총영사였던 헨리 설트(Henry Salt)는 이집트의 거대한 조각들을 수집 하였으며 나중에 대영박물관은 이를 구입하였다. 1799년에 주(駐)콘스탄티노플의 대사로 부임 한 엘진경(Earl of Elgin) 또한 당시의 다른 외교관들처럼 발굴에 온힘을 기울였다. 그는 파 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을 안전하계 지킨다는 명목으로 공식허가를 얻어 조각품을 신전에서 떼 어냈으며, 이를 영국으로 옮겼다. 국회는 이 조각들을 대영박물관에 소장해 줄 것을 보장하였 으며, 1962년부터 전시하였다. 그리고 전시공간은 두빈경(Lord Duveen)외 기부금으로 마련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엘진 대리석(Elgin Marble)이라고 부르게 된 파르테논 신전 조각은 당시의 미술사학과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진위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스 고전기의 최고봉인 피 디아스의 조각이 당시까지 믿어오던 대로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함"을 보여주지 않고, 신 전의 서쪽 팀파늄에서 떼어낸 <아이리스>(도판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히려 격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진품의 등장은 이제까지 모작을 바탕으로 쓰여지던그리스 고전기 미술의 참모습을 알게 해 주었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나 베를린박물관과 같은 거대한 박물관의 수장품들이 식민지 점령시대의 소산인 만큼 그 도덕성을 비판받고 있지만 유럽인들의 타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들은 미술품을 단순한 아름다움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증거물로 보았으며, 이 증거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인식하였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소위 원시 미술들은 문 화의 상대주의를 일깨워주었으며, 고전적인 경향의 미술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의 역할을 논하는 이 글에서 교육적인 효과를 장황히 설명하는 이 유는, 후원자들에게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문화에 대한 인식이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의 성립을 가능케 한 후원자는 위에 언급한 한스 슬로안경과 엘진경 이외에도 이루 헤 아릴 수 얼이 많은 수집가와 기증자 그리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었으나 그들로 하여금 이 유물의 귀중함을 알게 한 것은 바로 타문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정치력과 경제력이 강하다고 훌륭한 미술관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8세기에 설립되고 19세기에 성장한 대영박물관은 국가에서 주도한 반면에, 20세기의 예를 대표하는 미국의 미술관들은 대부분 후원자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다. 뉴욕의 현대미술 관 설립의 초창기를 살펴봄으로써 20세기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