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의 역할 - 역사적 전개와 의의 -

이 은 기(목원대학교 교수)

Ⅰ. 序 - 후원자와 미술사가와 행정가
Ⅱ.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관과 후원자
Ⅲ. 우피치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 		Ⅳ. 他문화 미술품에 대한 관심 - 대영박물관
Ⅴ. 뉴욕 현대미술관 설립의 세후원자와행정가
Ⅵ. 結-앞으로의 후원에 대하여
Ⅱ, 르네상스이전의 미술관과 후원자

귀중한 물건이나 예술품을 수집하는 행위는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주로 신전이나 무덤 그리고 통치자의 거주공간에 귀한 물건 아름다운 미술품, 또는 상징물들을 소장하였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박물관에서 옛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목적을 떠나 순수한 학예활동으로 평가한 것은 헬레니즘시대에 비롯되었다.

프톨레미 1세(Ptolemy I)는 알렉산드리아에 학자와 예술가들이 활동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그곳을 Museum 이라 불렀다. 뮤즈(Muse)가 학예와 예술을 관장하는 신이니 그곳은 '예술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미술품을 평가하고 수집한 것 또한 이 시대에 시작되었다. 아탈루스 1세(Atta- los I)는 페르가몬의 아크로폴리스에 옛 조각품을 모아 미술사의 전개대로 진열하였다고 한 다. 신상을 종교적인 인식을 떠나 미적인 관심으로 역사적인 인식을 가지고 모은 첫번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탈루스 Ⅰ세의 뒤를 이은 에우메네스 Ⅱ세는 그들이 구할 수 없는 작품 을 복제하도록 주문하였으니 그들의 미술사적인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미술품의 본격적인 수집과 대중에의 공개는 로마시대에 이루어졌다. 로마인들이 전쟁의 전 리품으로 가져온 조각상과 회화들을 통해 그리스 미술은 재발견되었다. 전쟁의 승리 후 가져 온 전리품을 일반에게 공개하기도 하였으며, 전리품 중 책들은 도서관을 이루게 하고 조각상 과 미술품은 귀족들의 별장을 꾸몄다.

큰부자들의 집엔 개인 도서관, 회화와 조각 전시실이 있었으며, 그리스원작을 가질 수 없을 때는 복제품을 주문하였다. 유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련되고, 지적인 교양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 한 수집경향은 부와 교양의 과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역사 인식이 결여된 것이어서 미술품 수집은 과거 미술품에 대한 인식보다 일종의 기호품 수집이었다.

그들은 우아한 아름다음을 지닌 고전기와 헬레니즘시대의 조각품을 선호하였다. 그 역설적 인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새로이 발굴되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고전기와 헬레니즘시대의 조각 품 원작을 보기 어려우며, 반면에 이보다 시대가 올라가는 다소 경직되고 미숙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아르카익 시대의 조각품은 로마인들의 손이 닿지 않은 덕분에 원작들이 남아있다.

따 라서 로마의 귀족들은 수집의 역사를 낳고, 현대의 박물관에 넘겨줄 많은 미술품을 전해준 널 은 의미의 후원자이지만 예술의 진정한 이해와 역사인식의 결여에서 미술품 수집의 부정적인 측면을 낳았다.

귀족들의 수집경향은 우아한 또는 선정적이기까지 한 조각에 치우쳤으나, '식견있는' 수집가 였던 아드리아누스 황제는 그리스 고전기를 로마시대에 재현하고자 하여 고전적인 건축과 고 전 조각품을 다량 복제케 하였다. 그는 고전기의 작품을 선호하였으나, 그 또한 새로운 시대 의 문화를 개척하는 관점에서 보다. 개인 별장의 호화로움과 방대함을 과시하고 수집자체의 행위에 치우쳐 경제력을 소진시켰다.

수집 못지 않게 중요한 로마인의 공헌은 아마 수집품의 일반인에의 공개일 것이다. 마르쿠스 아그리파(Marcus Agrippa)는 그렇게 맡은 그리스 미술품들이 원 소유자를 떠나 로마귀족의 별장 장식품이 되는 것을 애석 해하면서, 그것을 보상하기 위하여도 미술품들을 일반에게 공개 하도록 촉구하였다. 이는 아마도 미술품 수집을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보는 즐거움 을 함께 누릴 일반인의 권한을 주장한 최초의 기록일 것이다.3)

중세의 미술관과 후원자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미술에 대한우리의 선입견을 없애고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흔히 중세는 종교적인 시대라서 교회와 종교의식의 도구만 있을 뿐 미술품의 수집이나 애호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중세에서는 고대나 르네상스와 같이 회화나 조각을 예술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중세의 미술품은 대부분 기독교 의식에 사용하는 성물(聖物) 이나 제단화, 성경 필사본, 성경이야기를 나타내는 벽화들이며 이들은 모두 교회와 수도원에 있던 것이다. 이들은 물론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종교심을 고조시키고, 기독교를 가르치는 목적으로 주문, 제작되었다.

그러나 높은 고딕성당이나 스테인드 글라스가 연출하는 성당의 내부 공간을 통해 얻는 성스러움,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통한 신자들의 추체험 등은 조형형태와 인간의 감성이 교류하는 예술활동이다.

또한 이러한 종교 미술품들이 놓여있는 성 당은 완전한 박물관이다. 현대의 박물관 전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작품들이 원래 있었던 상황 과는 달리 육면체 방의 흰 벽에 그림만 걸리기 때문에 작품의 주변과 기능을 짐작할 수 없다 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성당 안은 작품의 원래자리와 기능이 살아있는 완전한 전시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쌩 드니(Saint Denis)성당을 설계하고, 스테인드 글라스나 청동문 을 주문하고, 그리고 이 미술품들을 제자리에 놓아 성당의 안과 밖을 성스러운 분위기로 연출 한 수저 주교(Abbot Suger)는 주문자이며 동시에 미술품을 지금까지 전해 준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 전역의 화가, 석공, 목공, 금은 세공가, 유리 세공가들에게 교회 안만을 꾸민 성물들을 주문하였는데 이 미술품들은 천상의 이미지를 시각화하여 영혼을 이끄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수저주교를 또 다른 개념의 후원자라고 보고 그가 주도한 고딕성당을 완전한 박물 관으로 고려한다면 관중은 일반 신자가 되는 셈이다.

그의 후원은 단순한 경제적인 지원이 아 니라 당대미술의 성격을 결정 지우고, 주도하였으며,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또한 미술품을 보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간파한 미술이론가요 미술관 운영자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말 14세기 결엔 십자군원정의 결과로 교통이 발달하고 이에 따라 무역과 상공업이 부 흥하였다. 당연히 도시가 번성하였으며 현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주거의 쾌적한 공간을 꾸미기 위하여 비종교적인 미술품들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여전히 성모자상이나 성서의 이야 기 주제로 그려지긴 했으나 현세적인 관심에서, 궁정의 실내를 장식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문, 제작 그리고 수집된 미술품들은 현세적인 관심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차츰 종교상의 이야 기는 주제일 뿐 평가의 기준은 아름다움 자체가 되어갔다. 상공업자 출신의 새로운 지배계급 들이 주문하고 수집한 필사본이나 벽걸이 타피스트리의 아담과 이브는 원죄의 주인공이기 보 다 아름다운 남자와 여자의 모델이 되어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