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의 역할 - 역사적 전개와 의의 -

이 은 기(목원대학교 교수)

Ⅰ. 序 - 후원자와 미술사가와 행정가
Ⅱ.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관과 후원자
Ⅲ. 우피치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 		Ⅳ. 他문화 미술품에 대한 관심 - 대영박물관
Ⅴ. 뉴욕 현대미술관 설립의 세후원자와행정가
Ⅵ. 結-앞으로의 후원에 대하여
Ⅲ.우피치 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

르네상스시대의 학문과 예술후원은 후원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대의 학문과 미술을 높이 평가하여 고대를 현대에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 문화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고대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역사 인식이 아니라 새 시대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탐구였다. 고대의 문헌과 조각상들이 다시 발굴되고 수장되었다. 궁정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고대 미술품 수집은 유행을 넘어서 거의 의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로렌쪼 로토(Lorenzo Lotto)의 그림 <인문학자 안드레아 오도니의 초상>(도판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지식인들은 옛 조각품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골동품 상인 이었던 아코포 스트라다는 티치아노작의 그의 초상(도판2)에서처럼 부유한 계급으로 성장하 였다. 위의 회화 자료를 통해 옛 조각품의 활발한 유통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고대 조각품 수집은 로마의 수집경향과는 차이가 있다. 르네상스시대의 수 집도 부와 권력이 있는 계층에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르네상스 초기의 수집동기는 고대의 문헌과 예술의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자 함이었다. 고대 건축의 비례 연구를 통해 르네상스 건축을 이룬 브루넬레스키, 고대조각의 규범(Canon)을 연구하여 15세기 조각의 대표자가 죈 도나텔로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고대는 새로운 모델이었으 며 원동력이었다.

상공업자 출신의 새로운 귀족들은 작품의 주문자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수집가들 이었다. 이 들의 수집은 인문학적 관심에서 고대유물을 탐구하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수집 경향과는 달 리 가문의 명예와 재산의 소유라는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후 원자 가문인 메디치가(Medici)조차도 인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미술의 애호가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후원은 가문의 정치적인 선전과 매우 밀접히 결속되어 있었다.5)

15세기 전반부터 2백여년동안 5-6세대에 걸쳐 지속된 메디치가의 주문과 미술품의 수집은 실로 엄청난 양에 이른다. 피렌체 시내에 있는 싼 마르코 수도원, 싼 로렌쪼 성당이 메디치가 의 후원으로 지어지고 그 안의 성화는 당시의 가장 유명한 화가, 조각가에게 주문되었다. 메 디치가에서 궁으로 쓰던 팔라쪼 메디치(Palazzo Medici)와 팔라쪼 베끼오(Palazzo Vecchi- o), 그리고 팔라쪼 피티(Palazzo Pitti)등의 궁전 또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그대로 그들이 소 장한 회화와 조각품이 진열된 채 현재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역시 메디치가의 주문으로 건설되고, 수집작품들이 전시되어있는 우피치미술관은 미술관 역 사의 큰 전환점을 이룩하고 있다. 건물의 1층을 사무실(英: office, 伊: uffitio)로 사용하고 2, 瑞에는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자 방들이 이어진 긴 회랑(英 : gallery, 伊: galleria) 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건물의 이름은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으로 부 르게 되었다. 그 동안 수집된 미술품은 이미 지어진 건물의 실내 장식역할을 하였지만 우피치 는 수집된 미술품을 진열하기 위해 지어진 최초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대 공작의 허락을 얻어 이곳을 관람했던 보끼(Francesco Bocchi)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갈레리아(미술관)에서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원래 있었던 공공 광장에 그대로 있었다면 비바람에 풍화되고 먼지가 끼었을 조각들이 여 기에서는 깨끗이 보존되어있다. 또한 하나씩 하나씩 볼 수 있어서 품위 있고 정중한 태 도로 쾌적히 즐길 수 있다.…중략…

미술관의 이 작품들은 아주 잘 관리되어서 먼지나, 바람, 비들로부터 안전하고 깨끗하다. 단순한 실내의 장식품이 아니고 수집된 미술품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분류 전시하여, 관 람자가 수집품을 예술 작품으로 대하면서 쾌적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최초의 문 화공간이었던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가의 후손인 공작 코지모 1세(Duca Cosimo 1: 1519∼1574)가 짓게 하고, 최초의 미술사가라고 일컬어지는 바자리(G. Vasari)가 1560년경에 설계하여 완성 하였다(도판3). 당시 피렌체 사회는 공화정과 군주제가 번복되다가 코지모 1세의 강력한 통치 예 의해 군주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코지모 1세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보여주던 메디치가 의 선조들과는 달리 학문과 예술을 노골적인 정치수단으로 삼은 통치자이다.7) 도판 4의 프레 스코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 사이에 군림하는 후원자였다. 아래 중앙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인물이 바자리이다.

우피치 미술관의 건립 또한 그의 정치적인 과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즉, 그가 이전에 거주하던 팔라쪼 베끼오와 아르노 江을 건너 새로 지은 팔라쪼 피티 사이를 잇기 위해 길게 회랑식으로 설계한, 도시계획 중의 일부 건물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정치선전을 위한 미술품 주문의 규모는 실로 방대하였으나 미술품을 애호하고 수집한 후원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미술사업을 성취시킨 총감독이었던 바자리는 「탁월한 건축가, 조각가, 화가의 열전」을 쓴 최 초의 미술사학자였다. 바자리는 자신이 화가,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였으며 또한 코지모 1세 의 대규모 미술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한 행정가 유형의 작가였다.

그는 「열전」에선 13세기부터 16세기 중엽 당시의 화가, 조각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작품과 일생에 대하여 저술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중세의 야만적인 미술은 13세기 후반의 화가 치마 부에 부터 중세를 벗어나, 지오토와 마사치오를 거쳐 16세기 전반의 미켈란젤로에 이르러 르 네상스 미술이 편성되었다고 보았다.

황금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이전 시대의 미술품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으며 미술관 건립의 필요성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러한 미술사적인 관점은 바로 수집된 미술품의 분류와 전시에로 적용되었다. 매우 근대적인 개념의 미술관 탄생이었던 것이다.

공작 코지모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프란체스코 1세(Francisco Ⅰ. 1541∼1587)는 정치에의 야망보다 경험과학자의 성향을 지닌 통치자였다. 포르투나(Fortuna)대사는 우르비 노의 공작에게 보내는 1583년의 편지에서, 대공작 프란체스코 1세가 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보 며 자신에게 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결국 대공작이 의도하는 바는 군인으로 또는 학자로 유 명한 모든 사람의 얼굴을 사실대로 묘사한 초상조각을 갖고자 하는 것이며, 이들을 고대의 두 상과 함께 진열하여 방대하고 굉장한 전시를 하고자 한다"고 쓰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제 일 윗층에 꾸미고자 한 위의 희망은 성취되지 못했지만 프란체스코 Ⅰ세의 수집과 전시의 성 격을 짐작케 한다. 그는 작품의 형태 안에 담겨 있는 예술성에 대한 이해보다는 인물의 외양 을 닮은 초상을 좋아했으며, 초상조각을 유명인의 실제를 대신하여 한 공간에 자리하게 함으 로써 마치 역사박물관과 같은 구상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설립과 전시를 가능하게 한 두 군주, 즉 코지모Ⅰ세와 프란체스코Ⅰ세의 성향이 정치적이거나 또는 실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구 우피치 미술관이 르네상스 미술의 보 고(寶庫)로 유지되고 성장한 것은 인문학적인 성향과 예술을 애호하였던 그들의 선조와 14세 기부터 발달한 피렌체의 문화적인 토양 때문이었다. 펠리 벤치벤니(Pelli-Bencivenni)의 글에 서 우리는 관람객의 성숙한 문화의식을 느낄 수 있다.

미술관(또는 박물관)은 솜씨의 세련됨과 기술적인 실천을 평가할 줄 아는 사람, 고대 를 애호하고 실내를 우아하게 꾸밀 줄 아는 사람에게 특히 흥미롭다. (미술관은) 다양 한 시대와 여러 나라의 미술가를 상상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중략‥‥ 초기 미술의 시도를 흐름에 따라보는 것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그것은 장인적인 것 에서 출발하여 완전함에 이른다. (이러한 점에서) 치마부에와 지오토의 그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이 그림들은) 초기의 이집트와 에트루스키의 작품들이 라파엘의 그림이나 안드레아 델 사르토, 도미니키노 등의 (완전한 작품으로 변한 것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10)

그들은 여러 시대와 다양한 지역의 미술을 보는 즐거움을 알았으며 또한 역사적인 관점을 가지고 감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피치미술관의 또 하나의 큰 공로는 드로잉의 수집이다. 바자리는 우피치 미술관의 설립초 기부터 회화나 조각의 완성품만이 아니라 그 때까지 작가의 작업실에 뒹굴던 드로잉을 수집 하였는데 이는 그의 미술이론가로서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그는 회화나 조각이 단순 한 육체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높은 정신 노동임을 역설하면서 이 정신노동의 과정은 바로 드 로잉에서 이루어진다고 간파하였다.

작품 구상의 단계를 창작의 가장 중요한 단계로 본 것이 다. 이는 미술이론가의 가치 기준이 미술관의 성격에 미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우리는 우피치 미술관의 성립과 성격 그리고 후원자를 살펴보았다. 우피치 미술관은 지배자의 의도에 의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한 16세기 후반 군주제 시대의 소산으로, 메디치가 의 후손인 공작 코지모 1세와 공작 프란체스코 1세의 후원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들의 후원 경향은 매우 정치적이었으나 이전 2백여년 동안 지속된 메디치가 선조들의 미술품 수집은 인 문학적인 소양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고대조각과 르네상스미술의 대표작들이 수집된 것 이었다. 이와 함께 미술의 역사인식이 발달한 피렌체의 문화적인 풍토 미술이론가이며 행정 가였던 바자리의 가치판단의 방향 등이 함께 어우러져 오늘의 우피치 미술관을 가능케 판 것 이다.

17-18세기의 프랑스는 중앙집권적인 절대왕정과 함께 중·소 자본가(bourgeois) 즉 중산층 이 성장한 시대이다. 궁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미술품의 수집은 사회적인 기득권을 과시하는 성향을 띈 반면에 중산층의 수집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취항이 반영된 애호가 (dilettante)적 인 성격을 지녔다.

따라서 후자는 미술품을 사는데 자신의 견해가 분명했으며 비평적인 판단 에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당연히 미술시장은 더욱 다양하고 활발해졌으며 수집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관심 또한 높아졌다. 이에 반해 왕립 아카데미가 문화를 대표하던 영국의 경우는 그 리스·로마,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등 전통적인 미의식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선호하였다.

샤로트(Charlotte)왕비의 주문에 따라 요한 죠파니(Johann Zoffany)가 그린 <우피치미술 관의 트리부나> (도판 5)는 고전적인 미술을 좋아하던 로얄 아카데미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트리부나는 우피치 미술관의 18번째 방의 이름으로, 작은 이 방엔 <메디치의 비너스>(화 면의 오른쪽 비너스)등 우아한 고전미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어 유명하다.

그러나 죠파니가 그린 <우피치 미술관의 트리부나>에 보이는 광경은 당시 유명한 회화와 조각작품을 모두 모아놓은 가상적인 상황이다. 이 작품들은 우피치의 다른 방에, 또는 피티궁에 더 나아 가서는 로마에 있는 작풍들이다.

그림에 모아놓은 작품의 성격을 보면 조각은 B.C 4세기 조각의 모작인 <메디치의 비너스> 와 헬레니즘시대의 조각이 대부분이며 뒷편에 로마황제의 흉상들이 보인다. 회화작품들은 라 파엘의 <의자의 성모>(왼쪽 끝 중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모자>,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아래 중앙) 그리고 루벤스의 <철학자들과 함께 있는 자화상>(오른쪽 위)등이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의 고전기 전기나, 르네상스의 전기에 속하는 다소 준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은 없고, 모두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전성기와 후기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 1697-1764)는 그들의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들은 영국의 미술을 평가할 줄 모르고, 르네상스 미술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탈리아 미술품을 사들이며 그것도 모조품들을 속아 사들인다고 말이다.

18세기에 이어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전반까지 계속된 식민지 점령과 제국주의는 수집의 경향과 미술관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까지 자국의 역사상황과 함께 변화해 오던 미술 품 수집은 식민지에서 들여온 미술품으로 인하여 전세계의 미술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유럽 의 가장 큰 박물관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독일의 베를린박물관, 그리고 영국의 대영박물 관은 그의 결과물이다. 이 글에서는 그 중 대영박물관의 예를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