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의 역할 - 역사적 전개와 의의 -

이 은 기(목원대학교 교수)

Ⅰ. 序 - 후원자와 미술사가와 행정가
Ⅱ.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관과 후원자
Ⅲ. 우피치미술관의 성립과 후원자 		Ⅳ. 他문화 미술품에 대한 관심 - 대영박물관
Ⅴ. 뉴욕 현대미술관 설립의 세후원자와행정가
Ⅵ. 結-앞으로의 후원에 대하여
Ⅰ. 序 - 후원자와 미술사가와 행정가

미술관 관람은 외국 여행 중 얻는 즐거움에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들은 방대한 수집과 체계적인 전시를 보석주어서 관람만으로도 미술사의 흐름을 터득케 하며 당대의 문화를 체감케 한다. 이탈리아 피켄체시에 있는 우피치미술관(Uffizi)을 둘러보고 나면 당시의 미술이 원근법과 양감의 묘사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였나 알 수 있으며 또한 고대에 대한 르네상스인들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을 관람하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추상화의 전개와 전후 미국의 미술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 미술관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맡은 미술품, 그것도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미술품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방대한 수장품을 어떠한 기준으로 선별하고 전시하였기에 관람자가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 미술의 가장 큰 관심을 알 수 있게 하였을까 ? 그것은 간단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수집은 후원자의 공로이며, 선별은 미술사가와 비평가의 기준에 의한 것이며, 전시는 행정가의 노력의 결과이다.

우리는 흔히 유럽은 역사가 깊고, 미국은 경제력이 강하여 훌륭한 미술관을 설립할 수 있었 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4천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자랑하는 우리 나라, 기적의 경제부흥을 이룩하였다는 우리 나라의 열악한 미술관과 비교해보면 서양 미술관의 성과가 단순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술관의 역사를 살펴볼수록 훌륭한 미술관은 일반인들의 지적인 소양과 공익정신 위에서 이루어짐을 절감한다.

예술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였을 때 식견 있는 후원자, 역사의식이 있는 작품의 선별가, 인문적인 소양이 있는 행정가 가 나을 수 있으며, 이들의 상호 공감대 위에서만이 훌륭한 미술관이 이룩되기 때문이다. 미술관 설립에 미친 후원자의 영향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너무 방대하여서 이 한편의 논문에서 모두 섭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고대와 중세에 대하여는 간단히 살펴보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우피치미술관, 18-19세기의 제국주 의 시대를 대표하는 런던의 대영박물관, 그리고 20세기에 미술관의 여러 가지 성격을 획기적으 로 변화시킨 뉴욕의 현대미술관을 좀더 상세히 다룸으로써 각 시대의 미술관의 성립과 후원 자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미술관'과 '후원자'의 용어를 규명하는 것이 순서이겠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미술관'은 'gallery'라 번역하면 현대의 미술품을 소장한 곳이고, '박 물된은 'museum'이라 번역하고 과거 즉 20세기 이전의 미술품을 전시한 곳이라고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엔 두 용어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

museum은 '뮤즈 (Muse)의 신전'을 뜻하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뮤즈는 학예, 시, 음악, 무용을 관 장하는 여신이니 그의 신전은 예술에 바치는 신전이다. 이후 '예술 활동을 하는 곳'이라는 의 미로 변화되었다가 현재는 '미술품을 보관, 전시하는 곳'을 뜻하고 있다.

한편 'gallery'는 원 래 '복도'나 '회랑'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galleria'에서 유래한다. 최초의 미술관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우피치미술관의 전시 공간이 회랑처럼 되어있고, 그 장소를 'galleria'라고 불렀기 때 문이다. 'museum'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위 순수예술의 관점을 지닌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따라서 선사시대의 도구들을 전시하는 곳은 박물관은 될 수 있어 도 미술관은 될 수 없다. 그러나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은 박물관도 될 수 있고 미술관도 될 수 있다. 그 예로 15-16세기의 르네상스 미술품을 전시하는 우피치는 '우피치 미술관'(Galle- ria degli Uffizi)이라 부르는데, 현대미술관을 전시하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은 오히려 'Museum of Modern Art' 직역하면 '현대미술의 박물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용어를 장황히 설명하는 이유는 미술관과 후원자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이 글에서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자 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글에서 사용하는 박물관의 의미는 '미술관' 과 같은 뜻임을 밝혀둔다.

'후원자'의 의미도 명확히 짚고 가야겠다. 미술사를 비롯한 미술비평 등 미술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작가와 작품의 문제보다 작품이 한 사회 안에서 태어나고, 이용, 유통되면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사회학적인 또는 문화인류학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한 면 에서 후원자 또는 고객, 수집가들은 작품의 실제 수요자로서 위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직접 적인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수요 경향은 공급 즉 작품의 제작과 옛 작품의 발굴 과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4년에 한국에서 '기업인 메세나협회'가 결성되고 홍보 되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후원자를 메세나라고 부르는 빈도가 높아졌다.

메세나스(英: Maecenas, 伊: Mecenate, 70 ? ∼B.C)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에 이름이 높았던 정치가로 시인 비르질리우스(伊: Virgilius, 英: Virgil, 70∼l9B.C)를 적극 적으로 그리고 순수하게 후원하였다. 그의 이름에서 비롯하여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를 메세나 스라 부르고, 후원하는 행위를 메세나티즘(Mecenatism)이라고 부른다. 메세나는 보다 전문적 인 용어이며 일반적으로는 후원을 페이트로네지 (Patronage)로, 후원자를 페이트론(Patron)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또한 'Patrono'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고대 로마에 서 평민을 보호하는 귀족 또는 해방된 노예의 옛 주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중세 이후 작품의 주문자와 실행하는 쟁이의 관계를 반영하는 용어이다. 이렇게 각 용어의 역사적 형성 과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경우엔 학문과 예술의 순수한 후원자는 메체나테(Mecenate 즉 메세나스 Maecenas)로, 자신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주문하는 후원자는 파트로노(Patro- no 즉 페이트론 patron) 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메세나스나 페이트론이 모두 일반적으로 후원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서로 다른 용어들은 후원자 역사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후원자라는 말로 통칭하 지만 그들의 목적과 역할은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에 그리스 미술품을 모아 오늘에 전해준 후원자는 수집가라 함이 정확하며, 중세시대에 거대한 교회를 짓게 하고 조각과 그림 을 가득 채우게 한 후원자는 엄격히 말하면 주문자이다.

또한 르네상스시대에 자신의 취항에 맞는 작가를 선정하여 그에게 자신의 정치선전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한 귀족도 주문자라함 이 정확하며, 17-18세기 네델란드의 경우 같이 그려놓은 그림을 화랑에서 사는 사람은 고객 이요 20세기 현대미술품들을 사고 수집하는 사람은 고객이나 수집가이다. 그리고 미술관의 설립을 위해 금전적인 혜택을 주는 사람은 기부자, 작품을 제공하는 사람을 기증자 등으로 부 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후원자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단순히 후원자라는 단어보다 수집가, 주문자, 기증자 등의 용어로 후원자를 지칭하고자 한다.

진정한 의미의 후원자는 그들의 행위에 자신의 목적(즉, 정치선전이나 부의 축적 또는 과시) 이 개입되지 않은 학문과 예술의 보호자이겠으나 대부분의 경우엔 자신의 목적과 예술의 육 성 그리고 사회적인 여건이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후원자와 예술가, 후원자와 미 술관의 관계는 후원자가 혜택을 주고 예술가나 미술관은 혜택을 받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후원의 행위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경제적인 여건 속에서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어나며 그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영향 또한 다양하다. 따라서 후원자에 대한 연구는 후원자, 이 글 의 경우엔 수집가나 기증자들이 예술품을 평가하는 수준, 후원하는 동기,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