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는 한국미술계 주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미술사를 정립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회화부문의 네 번째 순서로 김봉태 작가(1937-)의 회고전이다. 김봉태는 원색의 색채와 기하학적 조형이 두드러지는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63년 파리비엔날레에 출품한 바 있으며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되는 국제조형미술협회 심포지움에 초대된 것을 계기로 L.A.에 있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3~85년 그곳을 근거로 다양한 활동 및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한인미술가 협회장, 미술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였고, 여러 공모전과 화랑을 통해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교환교수로 한국을 오가다가 1986년부터 국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되면서 결국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자>, <비시원>, <창문>, 그리고 <춤추는 상자>와 <축적> 연작에 이르기까지 초기 표현적인 추상미술(앵포르멜) 작품을 제외하고는 기하학적 조형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즉 평면작업에 나타나던 기하학적 형상과 삼차원적인 요소가, 색면의 변형캔버스로, 빛이 투과되는 재료를 통해 공간감의 확장으로 나타나는 작업의 전 과정이다. 색, 형태, 선, 이차원과 삼차원성 등 조형의 본질을 찾아가는 김봉태 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 작가의 부단한 예술적 성취물과 성실한 작가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공개되었던 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드로잉들이 다수 출품됨으로써 완성작 이면에 가리워진 제작 과정의 생생함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은 한국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조류에도 편승되지 않고 자신만의 조형을 이루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 의식과 종국에 도달하게 되는 자유로움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같은 조각, 조각 같은 회화, 이차원성과 삼차원성이 변주되는 김봉태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층 풍부해진 한국미술사의 층위(層位)를 들여다보고 그 조형의 본질을 찾아가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표현적인 추상미술(앵포르멜)의 시기(1960년대 초반)
대학을 졸업할 시기 김봉태는 ‘1960년 미술가협회’ 창립전, 1961년 '현대미술가협회'와의 연립전, 1962년 '악튀엘' 창립전에 참여한 바 있다. 당시 작업은 서체에서 오는 느낌을 작품화한 표현적인 추상미술 계열의 작품이었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 김봉태를 비롯한 서울대, 홍익대 재학생 및 졸업생 12명이 모여 ‘1960년 미술가협회’를 출범하였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당시 보수적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수상 경향에 반발하여 그 전시회가 열리던 덕수궁 돌담벽에 작품을 내걸었던 젊은 작가들의 항거였다. 두 협회의 연립전 이후 악튀엘이라는 한 단체로 재구성되지만 다음 시대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와해되고 만다. 1963년 김봉태는 파리비엔날레에 판화를 출품하였고 그 작품이 프랑스 정부에 소장되기도 하였다. 이때 출품했던 판화는 당시 젊은 세대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앵포르멜 경향의 판화였다는 점에서 이전 판화와는 구별되게 한 시대의 흐름을 판화를 통해 구현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자> 연작(1960년대 중반~1980년)
재미시절(1963~85) 등장한 선, 면의 기하학적 조형은 평면성을 추구한 미국 추상회화의 한 경향인 하드에지(Harde Edge)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기하학적 조형이 동·서양 고대와 현대를 통틀어 가장 보편적인 형태라고 인식했고, 평면성 보다는 3차원의 입체성을 추구하였다. 1968년 사각형 안에 사각형, 삼각형 안에 삼각형 패턴이 나타나고, 1969년에는 입방체를 띠는 <교체> 연작과 부조인 <기둥> 연작이 제작되었으며, 1970~76년에는 원시미술에 대한 관심과 3차원성의 탐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대표작인 <그림자> 연작(1978~80)은 수평선을 중심으로 이분화된 공간 위에 조각적인 형상이 서 있고 아래에는 그림자가 놓여있는 작업이다. 화면에 등장한 형태는 착시적인 효과로 '구조체로서의 사물'과 같은 입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미국의 하드에지 회화와 원시·민속 미술의 기하학적 형태, 원색의 색채, 강한 정신성 등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을 종합하는 총체적인 인식을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비시원(非始源)> 연작(1980년대 초반~1990년대)
작가는 1982년『한사상』이라는 책과 강연을 접한 후 서울에 교환교수로 오가면서 <비시원> 연작을 제작하게 된다. 이것은 원형의 띠가 보이는 중심이 강한 구성으로 기하학적 패턴인 팔괘가 그려져 있다. '한'은 비시원적이며 시공을 초월해 있는 무한이고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작의 화면 안에 원형은 정신세계를 상징하며, 오방색(五方色) 역시 사방과 가운데를 상징하는 방위색으로 우주 자체를 지시한다. 작가는 오색 보다 많은 15~30가지의 색을 반복적인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손의 흔적이 남는, 보다 회화적이고 조형적인 화면을 제시한다. 기하학적 조형이 서구의 형식에서 시작되었다면 <비시원>은 바로 한국적인 사상의 심취에서 나온 상징적인 조형이라 할 수 있다. 오랜 해외 생활로 동서양의 특징을 예민하게 포착하게 되는 환경 속에서 작가는 동양관을 바탕으로 상징적인 개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이 존재하는 근거와 정체성을 찾아가고 정립해가는 과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창문> 연작(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196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기하학적 형상 및 동양성에 천착한 작품이 <그림자> 연작에서 <비시원> 연작으로 심화되었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는 색채와 면의 유희성을 보이는 작품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기점에 해당되는 <창문> 연작은 창문의 이미지를 매개로 변형캔버스와 알루미늄 부조로 이루어져 있다. 창은 빛, 희망, 미지의 세계이자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한다. <창문> 연작에서 색면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며, 그것은 곧 공간이고 빛이 된다. 틀 역시 그림의 일부가 된다. 창의 변주는 옷고름이나 접힌 소매 자락 등을 연상시키며 종이 접기를 하는 듯한 색면 놀이를 보여준다.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창틀은 단조로운 화면에 대비되는 움직임을 준다. 이는 부조적 이미지를 강조하며 규격화된 틀을 벗어나 회화와 조각의 중간 단계인 독립적 입체 조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춤추는 상자> 연작(2000년대 중후반)
빛을 투과하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공간감의 확장을 표현한 작품이다. <춤추는 상자>는 상자 모으기에서 출발하여 1년여를 상자와 놀면서 펼쳐도 보고 색도 칠하고 청동으로 캐스팅하면서 드로잉, 회화, 조각 작업으로까지 확대된다. 버려진 상자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된 이 연작은 대상에 감정 이입이 되면서 상자는 춤추는 듯, 날아다니는 듯한 의인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사용된 플렉시글라스(plexiglass)는 빛을 투과하는 반투명한 재질로, 같은 색의 물감을 판의 앞면과 뒷면에 칠하면 마치 다른 색을 입힌 것 같은 부드러운 깊이감이 나타난다. 그리고 액자틀을 만들면서 플렉시글라스를 액자 후면에서 2cm 정도 띄우게 되는데 이때도 그림자가 생긴다. 즉 실제로는 평면에 그린 그림이지만 마치 입체로 된 상자를 보는 것 같은 환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료를 통한 조형의 탐구는 이차원성과 삼차원성의 변주로 한 단계 승화되고 있다.
<축적> 연작(2010년대~)
<춤추는 상자>가 쓸모없어져 버려진 상자에서 출발했다면 <축적>은 배달되거나 구입된 상자들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일상의 물건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작업에 투영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일상성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 연작은 텍스트가 쓰여져 있는, 다수의 상자를 재현(再現)한 작품이다. 육면체에 써 있는, 기하학적 형태의 글자는 화면에 변화와 활력을 주는 한편 글자의 가독성이 작품 감상에 저해된다고 하여 지워지기도 하였다. 쌓여지거나 흩어진 상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우연성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성찰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작은 비록 재현적 이미지에서 출발하였지만 상자의 형태나 글자의 형태가 원근법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마치 1965년 첫 기하학 조각의 부유하는 느낌과도 닮아있다. 상자라는 소재와 플렉시글라스라는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축적>은 <춤추는 상자>의 또 다른 진화라 할 수 있으나 <축적>은 <춤추는 상자>에 비해 보다 재현적이면서 회화적이고 관념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