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미술관 공간을 모색하다, «젊은 모색 2023» 인터뷰 2편

전시정보

(왼쪽부터) 오혜진, 박희찬, 백종관, 씨오엠(김세중, 한주원) (왼쪽부터) 오혜진, 박희찬, 백종관, 씨오엠(김세중, 한주원)

작가 인터뷰
미술관 공간을 모색하다, «젊은 모색 2023» 인터뷰 2편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은 전시의 무대가 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주제로 삼은 전시이다.
1986년 개관해 40년 가까이 작가를 초대하고 작품을 선보이며 전시라는 장을 만들었던
이 오래된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새로운 인식의 창을 열기위해 미술관의 물리적 흔적과
전시를 비롯한 지난 실천들을 자신만의 시각 언어로 써내려간다.
이번에는 오혜진, 박희찬, 백종관, 씨오엠(김세중, 한주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공간을 어떻게 읽고 다룰지 고민하는 시간을 지나오다” 오혜진

오혜진 작가 오혜진 작가

Q. 이번에는 기존의 전시그래픽 작업이 아니라, 미술관을 탐색 주제로 삼은 작품을 제작하셨는데요.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참여 소감이 궁금합니다.

그래픽 디자인 작업과 예술 작업의 차이는 산업적 기능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형태적으로나 내용적으로는 경계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은 결정적인 차이이고 그에 따라 과정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별 것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업은 평소 제가 하던 것과 그다지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으레 전시 디자인 작업을 할 때면 보조적으로 취급되던 시공간 정보를 작품의 재료로 가져와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작업을 할 때 데니스 우드의 『모든 것은 노래한다』라는 책을 많이 참조했는데요. 내용 중 ‘정보가 객관적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그것을 마치 시처럼 읽고 다뤄보라’는 문장이 흥미로웠습니다.

Q. 시공간 정보 값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 인상적입니다. 작업을 대할 때 ‘무엇’을 나타내는지 보다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으신 것 같은데요. 이번 출품작에 대한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오혜진 작가 전시 전경 오혜진 작가 전시 전경

평소 커미션에 의한 그래픽 디자인을 할 때면 우리가 흔히 내용이라 부르는, 작업의 재료가 사전에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그래픽 디자인은 엄밀히 말하면 ‘어떠한 재료를 읽고 다루는 태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업을 시작할 때 내용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내용을 ‘어떻게’ 읽고 다뤘느냐에 중점을 두어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시공간 정보라는 것은 ‘어떻게’를 드러내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한 것이고, 실질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던 부분은 ‘이 한 두 줄짜리 시공간 정보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시공간 정보를 계속 탐구하다보니 시간은 전시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전시 그래픽 디자인의 직능을, 공간은 오랫동안 불변하며 그 자리에 존재하는 건축물과 주변 장소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각 언어가 산업적 기능을 우위에 둔다면 어느 정도 직관적으로 표현해야 하겠지만 그 기능이 약해질수록, 가령 전시 작품을 위해 고안될 때면 표현 방식이 어느 정도 함축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텍스트로 비유하자면 전자의 경우는 설명서 또는 읽기 쉬운 산문에 가깝고, 후자의 경우는 시에 가까운 거죠. 따라서 재료로 선택한 이 시공간 정보에서 끌어낸 서사를 마치 시처럼 함축적인 언어로 시각화하려면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부터 드러내지 않아야 할지 그 지점을 궁리하는 게 큰 고민이었습니다.

시각적 형태, 크기, 색상, 기법, 텍스트 여부,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 등 모든 선택들이 전부 이 부분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산업적 기능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의 경우, 그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어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몸에 밴 고민 같기도 해서 이 직능에 관해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 작업은 저에게 있어서 어떠한 생각의 완결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어떤 생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생각을 작업으로 이어서 만들어보고 싶은 게 많아졌다는 점이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Q. 인스타그램 스토리처럼 ‘과거의 오늘에 걸쳐있던’ 전시 그래픽을 소환해 새로운 형태로 보여준다고 언급하신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관람객들이 ‹미술관 읽기›를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이와 관련해서도 언급 부탁드립니다.

‹미술관 읽기›는 총 4점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시 기간›의 경우 사라지는 정보이기에 인스타그램의 ‘과거의 오늘’ 기능을 참조해 젊은 모색과 동일한 과거의 날짜에 걸쳐있던 전시 그래픽을 샘플링한 뒤 재조합된 그래픽으로 불러오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전시실에 드러나는 그래픽의 조합은 날짜에 따라 매일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관람 시간›은 반복되는 정보임에 착안하여 시계라는 매체를 전시실 안으로 가져와 시간이라는 실질적인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함축적인 추상 기호 작품으로도 기능하게 만든 작업입니다.

‹찾아오시는 길›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둘러싼 지리적 특수성을, 미술관까지 찾아가는 정보값을 활용해 청각 언어와 시각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 작업입니다. 청각 언어와 시각 언어가 서로 중복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다소 엇박자를 이룸으로써 읽기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지를 고민해본 작업입니다. ‹이미지 목록›은 첫 번째 작품 ‹전시 기간›이 작동하는 개념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작업입니다. 전시실 벽면의 캡션이 대부분의 관람객에게는 단지 그 안에 담긴 내용만 파악하는 도구이겠으나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그 역시 작업 결과물임을 떠올리며, 평소 전시 그래픽 디자인을 하던 직능이 화이트큐브 안으로 들어온 현 상황을 비유하고자 고안해 낸 작업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많은 분들의 감상이 더욱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우리시대의 예술 대성당,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읽다” 박희찬

박희찬 작가 박희찬 작가

Q. 미술관 방문이 대성당에서 찬양, 기도, 묵상을 이어가는 것과 유사하다고 작가노트에 쓰셨는데요. 미술관을 종교 공간에 비교한 이유와 함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의례적 특성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만나고 체험하면서 힐링의 시간을 얻습니다. 각자 일상의 부분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는 미술관 경험이, 종교 공간에서 신을 만나고 영적인 경험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성당에서 순례자들은 성직자의 인도에 따라 의례에 참여하거나 종교 공간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것이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건축가나 큐레이터가 계획한 시퀀스에 따라 공간들을 이동하며 작품을 관람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전시 작품인 ‹리추얼 머신›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가진 의례적인 특성들, 그리고 건축, 예술작품, 큐레이터와 관람객 등이 만들어내는 관계성을 되돌아보고 예찬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우리시대의 예술 대성당(cathedral)처럼 읽습니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과는 달리 비교적 접근성도 부족하고, 대공원역에서 내리면 산을 돌아서 도달해야 하며, 정해진 루트에 따라 전시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관람객이 미술관 로비에 도착하면 램프코어를 통해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전시 공간을 경험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옥상정원으로 인도됩니다. 그곳에서는 내가 돌아왔던 청계산의 풍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집니다. 원형의 램프와 길게 연결된 복도들을 반복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예술을 만나는 경험, 그 의례적 특성들을 이번 작품에 담아봤습니다.

Q. ‹리추얼 머신›이 설치된 장소는 전시의 공공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곳이고, 그 가운데 머신은 마치 퍼포먼스 배우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작품을 고안한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희찬 작가 전시 전경 박희찬 작가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예술 작품을 담아내는 배경이 되는 무대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건축 자체가 스스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배우와 같습니다. 그런 미술관의 특성들이 표현된 작업이 이번 ‹리추얼 머신›입니다. 머신을 돌고 있는 구슬들은 관람객 개개인일수도 있고, 미술관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길게 연결된 램프들은 미술관의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동선일 수도 있고, 미술관 주변의 청계산 풍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미술관이 가진 의례적 특성들을 읽어내고 그 의례에 각자의 방식으로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중세의 대성당 순례자처럼 젊은 모색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평화와 영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Q. 디자인 도구로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을 활용하고 있으신데요. 작업 과정 중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젊은 모색’ 전시 참여 의뢰를 받고 긴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실험해야했고 테스트해야 했습니다. 작동하고 움직이는 기계장치들을 빠르게 테스트하기 위해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을 적극 이용했습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들이 있었고, 이 작품은 이를 대변합니다. ‹리추얼 머신› 한쪽 편에 그간의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프로토타입들을 전시한 이유도 ‘변화하는 작업생산 방식’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특이한 형상을 지닌 부재(部材)를 제작하는 방법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대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코끼리열차를 탔던 첫 번째 데이트를, 또 누군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예술작품을 만났던 하루를 기억할 텐데요. 그런 하루의 시퀀스들을 ‹리추얼 머신›을 통해 다시 소환하고 미소 짓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간의 선을 따라가다 발견하는 저 너머의 빛” 백종관

Q. 관람객들은 화이트큐브 안에서 ‹섬아연광›을 감상할 텐데요. 독자들을 위해 작품의 이해를 돕는 장치인 동선, 시선, 프레임에 대해 더욱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공간 구조에 의하면, 1전시실의 관람을 마친 관람객들은 Mu:p(뭎)의 작품이 설치된 중앙홀을 지나 2전시실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섬아연광›을 마주하게 됩니다. 멀리 전시실 안쪽 벽면에 무엇인가 섬광처럼 번쩍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세 겹이나 되는 막이 시야의 중앙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안쪽에 어떤 이미지가 있는지 바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 궁금증을 간직한 채 관객들은 저 안쪽의 영사되는 이미지를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영상을 작업 매체로 삼는데 이번에는 영상뿐만 아니라 영상이 놓여 있는 공간을 관람객이 감각하고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람객이 영상을 보기 위해 특정한 동선을 거치도록 가림막을 배치했습니다. 막 사이의 ‘길’을 이동하는 동안 관객의 시선은 영상이 걸려있는 벽면 쪽 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들을 자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열려있는 프레임 너머로 영상을 향해 시선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동선이 오직 영상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시선의 방향이 다양해질 수 있고, 관객들은 영상 이외에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공간을 지각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막의 역할을 하는 목재 패널에는 막 너머를 볼 수 있는 열린 프레임들이 몇 개 있습니다. 이 프레임들의 크기와 위치를 정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관람객은 어떤 위치를 점유하느냐에 따라 프레임의 연쇄를 경험할 수도 있고(가장 멀리에서도 가장 안쪽 혹은 바깥쪽의 이미지를 볼 수 있고) 단절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프레임의 크기가 작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프레임 너머로 영상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의 모습, 전시 공간의 다른 벽면 혹은 바닥 등을 시야에 함께 둘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설계하고자 했습니다.

백종관 작가 전시 전경 백종관 작가 전시 전경

Q. ‹섬아연광›은 작가님께서 과거 인터뷰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해방된 관객을 다시 붕괴시키는’ 실험 같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결정(結晶)을 이루길 원하시나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몇 개의 구조물 배치를 통해 어느 정도 관객의 동선을 제한하며 유도한 부분이 있습니다. 관객의 ‘해방’을 거칠게 설명하자면, 관객이 작품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번역함으로써 작품의 의미가 안팎에서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 ‘방식’의 유형을 제가 협소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찾은 관객들의 관람 행위를 상상해 보았을 때 오히려 제가 몇 가지 요소를 제한하는 것이 ‘해방’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해방과 붕괴는 비슷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관객의 붕괴, ‘붕괴된 관객’이라는 표현은 『디테일』이라는 책에서 빌려 왔던 말입니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관객이 다른 거리를 취할 때 위기가 발생합니다. 저는 이러한 붕괴의 위기를 즐기는 편이고 관객들 역시 다양한 거리 감각으로 작업을 경험할 수 있기를(가까이에서 이미지의 표면을 뜯어먹거나 또한 멀리서 이미지를 짐작해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결정(結晶)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과정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전시 공간 내부에서 관객들의 동선과 시선이 교차하고 새겨지는 과정으로 여겼고, 그 과정 자체가 ‘섬아연광’이라는 결정의 구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섬아연광›을 작업하는 동안 느꼈던 소감 혹은 인상 깊었던 경험 등 독자들이 작가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관람객의 동선은 ‘시간의 선’이기도 합니다. 공간적인 개념에서의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거리, 시간의 멀고 가까움을 함께 작품 안에서 고려해야 함을 작업을 진행하며 느꼈습니다. 리서치 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개관 당시 열렸던 전시와 관련하여 미술관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서신들을 검토했고 그 중 일부가 ‹섬아연광›의 주요한 참조물이 되었습니다.

서신을 통해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을 구성하는 것이 작가와 작품과 관객의 시간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양한 영역에서 준비하고 실현시키는 전시 노동자들의 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동선을 만드는 것은 시간의 틈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 ‘미술관’과 ‘전시’를 가능케 하는 다른 시간과 그 시간에 존재했던 은밀하고 열렬한 감각이 조금이나마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그러한 연유에서, ‹섬아연광›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각기 다른 시간적 차원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위치는 몇 걸음 전일 수도 있고, 훨씬 더 먼 과거일 수도 있겠습니다.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씨오엠

씨오엠(김세중, 한주원) 씨오엠(김세중, 한주원)

Q. 가구 디자인, 기업 사옥 작업, 전시 공간 작업 등 다양한 행보를 이어오고 계신데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공적인 공간’, ‘예술을 담는 공간’에 관해 작업하면서 느끼신 소감, 그리고 특히 더 고민하셨던 지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늘 대상이 취하는 형태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신발은 그것을 담은 발의 형상을, 의자는 앉은 자세의 신체를 담고 있습니다. 당연히 각각의 소재 또한 그 쓰임에 맞게 정해집니다. 그렇다면 40여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개관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이곳에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요. 당대 미술의 모습일까요? 아니면 건물이 놓일 지리적 환경이 건물의 형태를 끌어낸 걸까요? 외벽은 화강석으로, 전시실은 화이트큐브로 마감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술관 조각모음›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작된 작업입니다.

Q. 건축 형식의 작품을 가구의 스케일로 가져오셨는데요. 작업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작가님이 발견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조형적 이정표’는 무엇이었는지, 왜 그것을 작품에 녹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자료 조사 도중 미술관이 가진 형태적 특징이 건축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된 것을 찾을 수 있었는데, 흥미로운 동시에 아찔했습니다. 얽히고설킨 국가 규모의 이해관계 속에서도 결국에는 개인의 경험이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한다는 점이 그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번 작업에 임하며 어떤 객관적 지표 보다는 경험과 기억에 기대 미술관의 요소들을 수집해보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면 수면에 반사된 다리, 담벼락과 모서리가 만나는 틈, 로툰다의 원뿔과 그 끝에 위치한 작은 발코니 등이 그것 입니다. 그 중 일부는 모두에게 이정표가 될 만한 것일 테고, 때로는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살펴야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정확한 좌표를 안내하기 보다는 일종의 보물 지도를 그려보고, 이를 건물의 시퀀스에 따라 전시실에 배치해 작업물이 모여 이루는 어떤 분위기로 우리가 경험한 미술관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Q. 관람객들은 이 작품 앞에서 동심 혹은 추억이라는 ‘관람객 자신만의 확대경’을 통해 작품을 들여다볼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을 고민하고 설치나 전시하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씨오엠 전시 전경 씨오엠 전시 전경

사실 이번 작업 설치물의 대부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가구의 스케일을 띄고 있습니다. 이런 익숙한 크기는 관람객이 조금 더 이 작업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데요. 전시 오프닝 파티 당일 사람들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앉거나 밀어보고, 짐을 올려놓는 등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지금의 미술관도 계획 당시와 다른 쓰임을 가지게 된 공간들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건물과 작업이 닮은 것 같아 재밌기도 하고요. 알듯 모를듯한 기능성을 발견한 관람객이 이건 벤치로 쓸 수 있겠다거나, 여기에 서랍이 있어 재밌다 라던가, 고양이가 좋아할 것 같다 등 친근한 상상을 해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도 ‹미술관 조각모음› 안에 더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담겼으면 합니다.

카카오톡 채널에 가입해 편리하게 소식을 받아보세요! 채널 추가하러 가기


작가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