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전시실 전경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인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는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횡단한 문신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전시이자
한국, 일본, 프랑스를 넘나들며 평생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작가의 예술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는 자리다.
그의 생애를 다시 바라보는 자리인 만큼 총 230여 점의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가 출품되었으며
작가 사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개인소장 회화와 드로잉 등 아카이브 100여 점도 같이 소개되고 있다.
‘우주를 향하여’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문신의 자유와 고독, 열정과 긴장이
써내려간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문신이 평생에 걸쳐 조각한 다채로운 예술의 지형을 탐색하다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전시실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은 창원특례시와 공동 주최로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를 9월 1일부터 2023년 1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조각, 회화, 공예,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 전모를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문신(文信, 1922~1995)은 1922년 일본 규슈의 탄광지대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와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운명이든 우연이든 이방인으로서 그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섯 살에 아버지의 고향 마산 땅을 밟은 그는 조모 슬하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조선이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열여섯의 나이에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해방과 함께 귀국한 그는 마산과 서울을 오가며 화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마흔 무렵 프랑스로 향했고, 파리에 둥지를 튼 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화가가 아닌 ‘조각가 문신’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인생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그의 삶은 작가로 하여금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 편협한 당파와 민족주의를 넘어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문신이 초월한 것은 비단 지리적, 민족적, 국가적 경계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회화에서 조각으로 영역을 이동했을 뿐만 아니라, 공예, 실내디자인, 건축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기성의 장르 개념을 벗어났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또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유기체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 깎아 들어감(彫)과 붙여나감(塑),물질과 정신 등 여러 이분법적 경계를 횡단했고 이들 대립항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찾아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신 조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대칭은 단순한 형태적, 구조적 좌우대칭을 뛰어넘는다. 그래서일까.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흐름 안에서나 195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한국 추상조각의 맥락에 비춰 볼 때 ‘이례적인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이밖에도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회고전은 이방인으로서 그가 지녔던 다채로운 경험과 감정이 동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의 부제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이 자신의 여러 조각 작품에 붙였던 제목을 인용했다.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던 작가에게 ‘우주’는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지의 세계,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고향과도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를 향하여’라는 문장은 창조적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갈망과, 내부로 침잠하지 않고 언제나 밖을 향했던 그의 도전적인 태도를 함축한다. 작가의 예술 세계를 크게 회화, 조각, 건축(공공미술)으로 나누어 살펴본 이번 전시의 작품을 미리 들여다보자.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뛰어넘은 예술가의 작품들

문신, ‹자화상›(1943)
캔버스에 유채, 94×80cm, 개인 소장.
‹자화상›은 도쿄 일본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던 시절 그린 작품으로 해부학에 근거한 인체 표현과 자연스러운 색감의 온건한 화풍을 보여주며, 화면을 과감하게 나누는 구도나 인물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재야 공모전인 이과전(二科展)에서 떨어지고 그 이듬해 제작한 작품으로 20대 초반의 조선인 청년은 자신을 마치 타인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 중년의 거장처럼 묘사했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예술인들이 거주하는 ‘이케부쿠로(池袋) 몽파르나스’ 예술인촌에 머물며 작업하던 작가가 민족적 정체성보다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중시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문신, ‹우주를 향하여 3›(1989)
브론즈, 67.8x38.5x22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Photo ⓒ [Suryusanbang] Lee Jheeyeung 문신, ‹우주를 향하여 3›(1989)
브론즈, 67.8x38.5x22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Photo ⓒ [Suryusanbang] Lee Jheeyeung](https://www.mmca.go.kr/upload/editor/newsletter/202209_2/img/2_img5.png)
문신, ‹우주를 향하여 3›(1989)
브론즈, 67.8x38.5x22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Photo ⓒ [Suryusanbang] Lee Jheeyeung
타오르는 불길,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려는 씨앗 또는 날아오르는 새 등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비상(飛上)’의 느낌으로 충만하다. 영구 귀국 후 문신의 작품에는 세포 분열된, 또는 복제된 배아처럼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구가 뾰족한 모서리를 가진 유선형 날개를 달고 상승하는 형태가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우주를 향하여 3›은 제목과 더불어 금속 특유의 물성으로 인해 우주에서 마주하게 된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날렵한 평면과 팽팽한 볼륨의 긴장이 극대화되어, 지상에 뿌리 내리고 있지만 무한한 창공을 꿈꾸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문신, ‹무제›(1995)
종이에 펜, 29.5x84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한편 전시에서는 문신의 드로잉도 만나볼 수 있다. 과거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건축을 위한 구상 및 설계 드로잉, 평면도 등이 400여 점 이상 전해진다.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에서부터 경사진 지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경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완성도 높은 드로잉까지 문신의 미술관 건축 드로잉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의 건축적 역량을 드러내고 그가 꿈꾼 ‘미술을 위한 전당’을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특히 대칭과 함께 동일한 패턴의 무한 반복과 확장이 만들어내는 수학적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친 바닥 드로잉은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문신의 조각은 완벽한 좌우대칭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지 않듯, 문신의 조각에서 대칭은 하나의 과정이자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잠재성이 다양하게 분화되는 생명체처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으로 존재하며, 동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의 예술 세계를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로 경험해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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